누구나....
경축, 농부탄생!
저는 15년 전에 서울에서 충청남도 홍성으로 삶터를 옮긴 농부입니다.
이른바 귀농이라고 하지요.
당시 팍팍한 도시살이보다 적게 벌더라도 시골생활이 더 여유로울 것 같아
마음을 먹은 지 1년 만에 과감히 도시를 떠났습니다.
허름한 농가와 딸린 농지 3천평으로 시작한 2년간의 임대농 생활은
새벽부터 깜깜해질 때까지 일을 해야하는 고된 생활의 연속이었지만,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기에 그때나 지금이나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귀농 첫해에 만난 어느 50대 선배 농부의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네요.
그이는 농사를 막 시작한 저에게 “나는 동창회가면 농사짓는다고 안 혀.
그냥 논다고 혀. 농사짓는다고 하면 백수보다 더 무시하더라고…."
십수년이 지난 지금 저는 어쩌다가 시골살이를 꿈꾸는 후배들 앞에 자주
서게 되었습니다. 귀농선배로서 후배님들께 농촌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때마다 그 선배 농부의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들려줍니다.
저는 아직까지 한 번도 ‘백수보다 못한 취급’을 받은 적이 없지만
농촌에서 실제로 그리 생각하는 이를 만났다는 게 충격이었습니다.
가난과 고된 농사일을 대물림하기 싫어 전답은 물론
애지중지하는 농우까지 팔아 학비를 보내며
자식만큼은 도시사람으로 만들고자 허리가 휘도록 일해온 선배 농부님들.
아직까지 입시철이면 어김없이 면사무소 네거리에 나부끼는
<00대 입학>,<사법고시 최종합격> 같은 현수막을 15년간 지켜보면서
언젠가 한 번은 평범한 농투성이를 주인공으로 한 현수막을 걸고 싶었습니다.
하여 다음달에 면내의 전문대학과정인 <풀무전공부 생태농업과정>을 졸업하고
꿈에 그리던 농부로 변신하는 우리 마을의 귀농 후배 조대성씨에게 얘기하니
흔쾌히 동의해주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풀무전공부는 아직 학력인가도 받지 않은 농업학교지만 졸업식을 ‘창업식’이라
바꿔 부를만큼 무언가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이 모여 농부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조대성씨가 과거 현수막에 이름을 올렸을법한 S대 출신이라는 겁니다.
사실 조대성씨 뿐만 아니라 지금 저희집 사랑채에 세든 친구도 조대성씨 동기로
같은 대학 출신입니다. 현수막에는 대표로 한 사람만 올렸을 뿐이지요.
저는 S대 출신이 농부로 변신한 사실이 쇼킹한 게 아니라
그이들의 시골살이에 대한 자세가 미덥습니다.
저희집에 세든 후배는 최신형 경차가 있지만
자전거로 가기 어려운 먼거리를 갈 때만 차에 오릅니다.
눈이 발목까지 빠져도,
영하 10도의 맹추위에도 어김없이 중무장을 하고 자전거에 오릅니다.
저희 집까지 오는 길은 긴 고갯길이어서 저도 자전거가 있지만
한 번도 집까지 타고 온 적이 없습니다.
고갯길을 오르자니 다리에 쥐가 날 것 같아 중간에 내려 끌고옵니다.
이런 길을 자동차를 놔두고 부러 자전거를 탄다는 게 참 별나네요.
그런데 제가 사는 곳에는 이런 이들이 자꾸 더해집니다.
빈 집을 구하기가 점점 더 어렵습니다.
저를 포함해 귀농 혹은 귀촌한 이들이 재미있게 사는 모습을 지켜보신
마을 어르신들의 생각이 달라지는 것을 피부로 느낍니다.
제가 귀농할 당시만해도 ‘무슨 문제가 있어서 왔는가’ 하시던 모습에서
당신들의 자녀도 우리처럼만 살면 내려와도 좋겠다고들 하시네요.
이미 어르신들도 자녀의 도회생활이 전만 못하다는 걸 알아차리신듯 합니다.
한 평생 고향을 떠나지 않고 꿋꿋하게 논과 밭에서
자녀들을 위해, 때로 백수보다도 못한 직업이라 손가락질당한
이 땅의 모든 농투성이들의 수고로움을 기리기 위해,
당신들의 길을 이을 후배 농군의 탄생을 자축해봅니다.
경축, 농부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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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쓰신 글과 만드신 현수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