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무 학부모회
우리가 강이 되어 만난다면 우리가 산이 되어 만난다면 우리의 작은 힘이 큰 강으로 큰 산으로 우뚝 우뚝 샘솟음 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흐른다면……
1. 호남 모임(전북 진안): 작은 공동체 마을이 영그는 것을 보다
2012년 풀무학부모하나되기가 1월 27일부터 2월1일까지 전북 진안을 시작으로 충북 청원, 강원도 양양, 경기도 양평, 충남 공주를 끝으로 5개 권역에서 무사히 막을 내렸습니다. 1월 27일 아침.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11시 20분에 집을 나섰지요. 올해 학부모 회장을 우여곡절 끝에 맡게 된 성황진회장님(3년 성해나, 2년 성찬일)과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저는(이순이) 풀무학교 행정실에 들려 노래책과 학부모현수막, 이름표 등을 챙겨 12시 25분에 교장선생님과 함께 진안으로 떠나는 5박 6일의 긴 여정에 올랐습니다.
작년에 풀무학부모 총무를 맡게 되었을 때 하나되기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기대 사항 중 하나였지만 구제역으로 인하여 모든 준비 완료 3일 전에 접어야 했기에 매우 큰 아쉬움을 가졌던 터라 올해 임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되기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학부모하나되기 후기를 써야겠다는 계획도 가지고요. 이 일은 누가 봐도 저의 소임같이 느껴졌습니다.
풀무살이 3년차에 접어들어 제법 틀을 갖춘 학부모가 되었지만 아직도 풀무살이는 겪어야 할 일이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풀무살이를 하면서 아이의 성장도 성장이려니와 부모로서 오롯이 성장하는 저를 만나는 2년이었습니다.
우리가 학교에 들어올 때 갑자기 우리를 아스라이 스쳐 지났던 아기 고라니의 모습을 교장선생님과 나누며 아기 고라니가 사라진 산등성이를 아쉽게 바라보았습니다. 아! 이번 여행은 또 어떤 영감과 성장을 줄 것인가? 마음 설레며 아기자기 아름다운 풀무 학교를 나섰습니다.
교장선생님의 이런저런 자상하신 말씀을 듣다보니 어느덧 4시 20분 쯤. 첫날 모임을 갖기로 한 진안의 포동 마을에 도착 할 수 있었습니다. 포동 마을의 풍경은 이런 연고가 아니라면 일생에 와 볼 수 없을 터인데, 쑥 들어와 자리 잡은 마을이 산으로 둘러싸여 아름답기 그지없었습니다. 우리가 지역대표님께 전화를 드리고 안착할 장소를 찾느라 잠시 분주한 사이 이미 도착한 신입생 학부모님인 이근영 가족을 만납니다. 가족 모두 와있었는데. 동생 이근호, 토기장이 학교 교사인 어머니, 전주에서 교직에 계신 아버지(이형순)였지요. 뒤이어 학우회장 조현진(의성 3년), 학우회부회장 주영선(홍동 3년), 학우회총무 강솔비(공주 3년), 학우회회계 류현진(서산 3년) 학생들이 도착했습니다. 올 한해 수고 할 학생들을 만나니 학부모 하나되기가 더욱 빛을 발한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어 마음 든든했습니다. 전회장님이었던 송주한(창업생. 송범근)학부모님께서는 얼마나 마음이 급하셨으면, 작년에 하나되기를 못한 한풀이를 하시려는 듯 이미 마이산 등반까지 마치고 나타나셨는데, 송주한 전회장님이 나타나니 자리는 더욱 넓어진 것 같았지요.
마을 회관에 짐을 풀고 우리는 이 마을 노인회장님(72세, 아담한 키. 사투리 구수하게 구사)의 소개로 마을 박물관을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이 마을에서 나고 자라신 노인회장님은 이 마을 사연을 들려주시며 마을에 대한 자부심을 내비쳤지요. 요즘 퇴락하는 농촌을 염두에 둔다면 이 힘, 이 자부심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궁금했습니다.
나중에야 구본경(진안 2년), 구해산(신입생)의 아버님 구자인(진안 곳곳에서 이분은 구박사로 통했습니다)학부모님이 그간 진안에 이런 정체성을 심는 사업에 전력투구 한 결과물임을 알 수 있었지요. 우리는 노인회장님의 설명으로 마을 작은 박물관에 전시된 오래된 농기구를 등을 둘러보았지요. 특별한 것이라면 그 동리 집집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사진첩이었는데, 예전의 추억이 되살아 나온 것 같았지요. 예전에 우리 세대가 살던 농촌 집에는 어느 집이나 가족사진이 낡은 액자에 빼곡하게 전시 되어 있곤 했는데, 이 동리 분들이 그 가족사진을 여기 마을 회관에 전시해 놓은 겁니다. 여기 살았던 집집마다의 역사가 담겨있는 오래 된 사진을 보는 것은 마치 그때로 거슬러 올라가 우리 부모님과 조부님 형제들을 만나고 있는 것 같은 정다움을 갖게 했지요. 농촌 공동체도 이렇게 갈 수 있구나, 하나의 대안을 만나는 순간이었지요.
눈썰매장 구경을 하고 우리는 마을의 500년 된 느티나무 아래에 섰습니다. 수 만 명의 사람들에게 500여 년 동안 그늘을 내어주었을 느티나무는 힘겨워 보였습니다. 여기저기 상처가 많았습니다. 마을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마을회장님이 돌아가셔도 이 느티나무는 오래 오래 그 어른을 기억할 테지요. 마을 둘러보기가 끝나고 우리는 마을 부녀회에서 준비해주신 미꾸리탕과 맛있는 찬들로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 사이 신입생 김세빈 아버지 김상철, 어머니 김남순님이 임실에서 오셨고, 또한 임실에 살고 계신 심재민(2년)의 어머니 유덕자, 심재은(창업생)의 아버지 심장섭, 어머니 노기자, 해남에서 신입생 김산, 김진오(2년)어머니 최복자, 김이수(2년)아버지 김군호 학부모님들이 오시어 총 24명이 옹기종기 모여 살아가는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정승관 교장선생님의 학교 전반에 관한 말씀은 언제 들어도 신선했습니다. 정승관 선생님과 김희옥 선생님은 아쉽게도 올 창업식이 끝나면 정선생님 35년, 김희옥 선생님 37년의 풀무학교 교직 생활을 마무리 하십니다. 아직 정년퇴임이 남으셨지만 세대교체 차원의 결정을 한 겁니다. 경북대 생물학과에서 명예퇴임을 하시고 오시는 박완 선생님께서 이사장 겸임으로 학교에서 상근하시고, 후임교장선생님으로 오홍섭 선생님이 내정되었고 과학선생님으로는 배지현 선생님, 배선생님의 남편은 정공부 정민철 선생님이라는 말씀도 이어졌습니다. 이미 방학식날 학생들에게 알려준지라 알고 계신 부모님들이 많이많이 서운해 하시고 걱정도 하시는 분위기였지요. 나흘간 이런 보고를 받은 모든 지역에 계신 부모님의 반응이 다 같았고요.
뒤이어 전회장으로부터 신임회장 추인, 신임회장 인사말이 이어졌고요. 신임회장님은 작년 사업을 계승하는 큰 틀로 2012년 사업을 하겠고 이번 하나되기에서 나온 의견을 반영하여 하나 정도 사업을 추가하는 학부모회를 이끌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풀무학교 다섯수레 중 하나인 학우회 임원진 소개 후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학우회장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올해 학우회는 ‘풀무 마실’이 공약이었다는 것, 풀무 마실로 학생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장을 만들어 내겠다는 것. 그래서 더불어 사는 정신을 실천할거라는 군요. 그것이 어떤 모양으로 나타날지 기대를 합니다. 1년 동안 많이 고생스러울 텐데 어려워도 많이 부딪히고 커가는 학우회가 되길 바랄뿐이지요. 괜한 안쓰러움이 앞섰습니다.
한숨 돌려 이제는 부모님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간. 이야기 다 들으려면 날밤 지새워야 할 텐데 긴 호흡을 하게 되더군요.
먼저 송주한 전회장(40대 후반, 파마한 노랑머리, 아이 셋)의 사는 이야기를 들었지요. 전직 출판사를 운영했고 현재는 뜻한 바가 있어 주부라는 말에(폭소) 주부로서 다 되는데 안되는 것이 요리라는 말에, “그게 뭐 주부냐”, 항의.(다시 폭소). 범근이 동생이(중3) 올해 시험을 보는데 걱정이라는 말에 경쟁자들 웅성웅성. 언제 들어도 느밀느밀 말씀도 잘하는 전회장님 살아가는 이야기에 뒤이어 선욱어머니 “선욱이가 풀무학교에 들어가 너무 잘하고 있고, 선욱이 때문에 오히려 엄마가 성장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는 말에 끄덕끄덕하는 분위기. 재민어머니 “(현재 치즈체험마을 운영 일 하고 있고 그러기까지 농촌에 내려와 고생이 많았다) 재민이 경우,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가 권하셨고, 지금 감사하다.” 재민 어머니의 “무슨 일을 해도 믿을 수 있고, 믿음직하다”라는 인상적인 말에 정선생님 “풀무 학생들은 최고 부모님의 아이들이다”라는 말에 부모님들 으쓱!
뒤이어 재은아버님의 가족사적 이야기 이어지고, “아이가 풀무에 다니는 것도 좋으나, 풀무 학부모로 사는 것을 얻은 좋은 시간이었다” 본경어머니의 “아이가 크는 것 보면서 엄마도 크고 있다” 미시담론부터 거시담론까지 다 적을 수 없는 이야기로 밤은 깊어지고, 본경아버님 등장. “(진안에 내려와서 지자체를 일구어 오는 일은 )지자체 바꾸는 데 조금의 힘을 보탠 것이다.”는 아주 겸손의 말씀과 신입생 김세빈 아버님 엔테테인먼트를 발견하는 밤. 강나루 건너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 시를 낭송하시고 사랑이 뭘까? 이수아버지(40대, 묶은 머리, 수염)에게 질문. 해남의 이외수. 어리둥절? 뒤이어 사랑의 정의 ~~~~~~ 또 윤동주 시 낭송. 천상병에 이르러, 핵심적으로다 하고 싶은 말씀 임실치즈. 치즈처럼 발효되고 숙성되는 것이 인생이라나 뭐라나. 옮기기의 힘겨움이여! 이쯤에서 맥락적으로 임실 사람들이 말을 청산유수로 잘하는구나. 치즈의 힘인가? 치즈는 말[語]을 늘어지게 하는 힘이 이었군.
신입생 산이 엄마(풀무 수업생, 아이들 실습지로 유명한 복자언니네) “풀무 수업생으로 풀무가 친정 같은 곳” 진오(2년)와 산이의 이야기. “농사지어도 당당하다. 자식은 기다리는 걸 잘해야 한다”는 말에 가슴이 출렁. 풀무학부모님들은 철학자나 진배없다는 생각. 정선생님 “ 일을 못하는 신인류가 탄생했는데, 풀무살이와 현장 실습을 통하여 아이들이 크게 변한다. (……)원칙 보다 더 좋은 것은 사랑이다” ‘복자언니’의 말이 힘을 더 얻고 밤은 자꾸 우리들 이야기 들으며 졸다가 잠을 설치다가 하면서 깊어가고 우리들 이야기도 무르익는다. 해남의 이외수, 이수아버지 등장. 살아가는 이야기 들으며 정샘이 가끔 말씀하시는 “아이들은 부모님의 뒷모습 보며 큰다”는 말을 이수아버님을 통하여 확인하게 되었고요. 신입생 근영이 부모님 차례. 어머니는 자신의 경험을 조근조근한 말로 들려 주셨고. 아버지는 “ 학부모 모임을 와서 풀무의 역사를 생각하게 된다. 근영이의 학교생활에 기대와 걱정을 하게 된다”고 하신 말이 기억에 남는군요. 마지막으로 서산에서 오신 3학년 대표 류현진아버님 외모보다 마음이 여린 분. 하지만 지금껏 전교조 운동에 헌신해 오신 분. “현진이가 원할 때. 현진이가 필요할 때 대학을 갔으면 좋겠다” 많은 부모님들의 생각을 대변하신 듯. 아이들은 아이들. 아이들은 지들의 인생을 잘 가고 있으니 우린 우리 부모들의 인생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도 누군가 한 듯. 다음날을 생각하면서 잠자리에 든 시간은 새벽 3시 반쯤.
다음날 아침 먹고 마을의 눈썰매장에 가서 어른 애 할 것 없이 썰매 타며 동심을 즐기고 난 후 각자의 짐을 꾸렸지요. 지역 대표로 장소와 맛난 먹거리 사회를 맡아주느라 고생한 본경 어머니(장미옥)니의 세세한 배려를 뒤로하고 아쉬운 작별을 하게 되었지요.
우리 일행은 저희 부부, 주영선, 조현진, 전회장님. 다음 장소인 충북 청원으로 이동하는 여정에 오르게 됩니다. 포동 마을을 나와 청원으로 가기 전 본경아버님의 소개로 잠시 들른 곳이 있는데 그곳은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라는 곳인데 사진작가 김지연씨가 옛정미소를 개조하여 사라져가는 마을의 다양한 영상물들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날 전시한 것들을 둘러보았는데 그 동네 어른이 일제시대부터 소장해 온 집안의 문서에 해당하는 것들을 감명 깊게 보았지요. 사소한 것들의 큰 감동의 힘을 느낀 짧은 시간이었답니다. 그 지역에 사시는 분들에게는 하나하나가 얼마나 더 값진 공간일지? 각자의 우리 마을에도 이런 공간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래저래 이 여행은 덤이 많네요.
2. 영남 ․ 충북 모임(충북 청원): ‘올곧은이’의 삶은 계속 된다
둘째 날, 충북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 고드미 마을에 5시가 되어 도착했습니다. 고드미 마을은 곧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의미하는데, 조선 광해군 때 신요라는 분이 곧은 말을 상소해 귀양살이를 하다가 풀리어 이곳에 숨어들어와 살았던 것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또한 단재 신채호 선생이 어린 시절 살던 마을이기도 하니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조한별(3년), 조한새임(2년)의 아버지 고향이기도 합니다. 과연 정샘이 말씀하시는 “좋은 터는 스님과 풀무 학부모가 다 잡았다”라는 말이 빈 말은 아님을 실감했지요.
우리의 도착을 먼저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 분은 한별 어머니였고요. 우리는 한옥 4채가 멋스럽게 자리 잡은 고드미녹색마을에서 짐을 풀었지요. 뒤이어 얌전하지만 약간 긴장한 듯 보이는 신입생 채동주 학생과 그 어머니가 도착했고 창업생 김준현 부모님, 지역대표 이한신(2년) 어머니가 오시자마자 분주하게 여러 가지를 챙기느라 바쁘게 움직였지요. 조금 있으니 깜찍한 신입생 이진경과 어머니가 오셔서 자리를 잡았고, 한신아버지, 창업생 박소리 아버님(전전전회장님)도 도착합니다. 정갈하지만 영남 특유의 매운 맛이 강하게 도는 저녁 식사를 맛있게 먹고 우리는 한신 아버지의 기타에 맞추어 노래를 함께 부르는 것으로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노래가 부모님들이 부르던 운동가요 일색이라 노래집을 다시 엮어야 하는 것은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지만 꼭 굳이 바꾸고 싶은 마음은 없는 듯 했지요. 영원한 우리의 노래. 자식들이 자라서 학부모가 되어도 이 노래를 부를까 잠시 생각했지요.
학부모회장 추인 및 회장 인사말, 학우회장 인사말들이 지난 밤처럼 진지하게 이어졌고, 교장선생님은 이사회에 참석차 아침에 서울에 가셔서 내려오고 있는지라 나중에 인사말을 들을 수 있었지요. 박소리 아버지(박종희)의 “ 풀무 정신, 철학, 역사에 관심을 가져 달라”는 주문과 “수업생학부모 모임 활성화”에 관련한 제안 등의 발언을 들으며 그동안 풀무 학부모 회장으로서 열정과 노력이 수업생 학부모모임 활성화로 나아가겠구나 싶었지요.
드디어 각자 사는 이야기에 들어가서 한별(한새임) 어머니의 고드미 마을에 시집와서 한별 아버지와 사는 이야기를 듣는데 기억나는 것은 귀농 14년의 세월, 자식 교육은 풀무에 온전히 맡기고 편하게 산다는 말이 인상적이었구요. 이한신 아버지 (경북 상주. 귀농 6년) “닭 500마리, 소 3마리, 송아지 한 마리를 키우는데 부산물로만 키워 곧 망할 것 같다”는 말에 폭소가 터지고, 말을 아끼시는 이한결(2년), 새결(수업생) 어머니는 “아이들 땜에 좋은 분들 만나 좋고, 학교에 다 맡긴다”는 말에 이어 한결 아버지 이종락 부회장님은 “이제까지 한결이 새결이 학교 다니면서 감 따느라 한 번 모임에 빠졌고 그 외는 단 한 번도 빠진 적 없다”해서 그런 줄 짐작 했지만 정확한 횟수를 듣고 그 열성에 다시 한 번 놀랐지요.
늘 얼굴을 보아 온 터라 편해진 김준현(창업)아버지 김하동(귀농 5년. 달마대사)님의 여러 작물(포도, 사과, 벼)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지요. “(준현이를 풀무에 보내고)3년 동안 가족 모두가 변했다. 창업하는 마당에 고민도 많았지만 후회할 점은 없다” 뒤이어 김기연(2년)의 삼촌은 ‘좃선일보’ 불매 운동으로 유명한 옥천신문사 기자로 “기연이가 잘 생활하고 있지만 일반 학생인 기연이 친구들을 볼 때 마음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기연이가 풀무에서 잘 배워 지역사회에 내려와 다시 배운 바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씀도 덧붙여 주였고요. 성희주 아버지 (충주. 교사)는 희주와 나눈 진로문제로 이야기를 풀어냈는데, “ 올 때 마다 좋고 그래서 안 올 수 없다” “다른 무엇보다 희주가 진로에 대해 탐색하는 귀한 시간이 풀무 3년 생활이다”.
이렇게 분위기 좋게 나가는데, 갑자기 학우회 주영선(3년 부회장)군의 폭탄선언이 나올 줄은. “풀무가 그렇게 다 좋은 학교는 아니에요” “풀무는 어렵게 어렵게 살아서 얻은 것이다”. 그래 그래 왜 모르겠니? 고맙고 기특하지. 조현진(3년)학우회장 방학에 빈둥거리는 자식들 꼴 보기 싫어하는 부모들한테 작심한 듯 “방학은 빈둥거릴 수 있는 자유스런 시간이다. 학교에서 힘들었다. (못 마땅해도)집에서 빈둥거리는 것 이해해 달라” 역시 학우회장과 부회장. 학생들 모두의 의견을 대변합니다.
준현어머니(김채복) “(조금은 쫄아 있을) 신입생 학부모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는 일성으로 시작한 발언이 계속 되는 가운데 “돌아보니 그만한 학교는 없다” 준현이가 창업을 맞이하는 방학 생활하는 것 보면서 “어디에 내놔도 잘 살 것이”라고 불안한 신입들을 안심시켜 주었고. 박소리(창업)어머니 신현주(청원, 수업생 있음)님은 “풀무 보내고 가장 마음 아팠던 날은 입학식 날 뿐” 모두 끄덕끄덕!!!!! “수업생 큰딸이 대학생활을 잘해내고 있는데, 모두 풀무가 준 정신이다” 뒤이어 소리아버지 박종희님은 “두 아이 7년 풀무를 보내며 찐하게 풀무를 온몸으로 느꼈다. 부모 마음대로 안된다. 놓아주는 것도 부모 몫이다”에 이어 조한새임(2년), 조한별(3년) 아버지 조관호님, 요즘 변혁을 꿈꾸며 막걸리집을 낸 이야기 들었지요.
드디어 숨죽이며 듣고 있던 신입생들과 부모님 차례. 먼저 부산에서 아이들 둘을 데리고 오신 신입생 김성근 아버지. 느릿느릿 점잖게 말했지만 어찌나 좌중을 웃기는지 내내 폭소의 도가니가 되었지요. 이분은 모든 말끝을 “아 예 그래 하지요” “그렇게 하지요” “ 그래 하지요” “네 그렇게 하지요” 로 끝냈는데 모두 부인의 의견을 듣고 어떤 결정을 할 때 그저 아버지는 그 말씀만 했다고 하네요. 가령 셋째 낳고 넷째 낳는다는 말에, 큰아이를 간디에 보낸다는 말에, 또 공동육아를 하자는 말에, 어린이 서점을 열겠다는 말에, 마지막으로 둘째 성근이를 풀무에 보내자는 말에. 이 아버지가 사는 법. “예 그렇게 하지요”였지요. 아주 쉽죠? 잉~~~. 성근이 어머니 대단대단. 과연 우리 남편이라면 그렇게 했을까? 내가 저 내공이 안 되는데 뭘 바래. 하는 생각 잠깐.
대단한 성근어머니 등장. “아이들 키우면서(남편이)그렇게 하지요. 하면 무사통과 되었다. (폭소)그러나 셋째 가졌을 때 친정아버지 딸 고생할까봐 반대해서 낳았고, 넷째 때는 7개월간 말 못했다. 아이들 넷을 키우면서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많은 걸 배웠다.”(아 그래서 풀무 학부모님들은 대부분 아이가 서넛은 기본이구나!!!!) 이야기 듣고 보니 성근어머니 설득의 대가. 남편이 다 오케이 한 것은 설득의 힘이었고 특히 살림과 육아가 얼마나 인생에서 중요한가를 설득하여 참여하게 했다는 대목에서 모두 기겁하는 수준. 마지막 한마디. “풀무나 간디나 오십보 백보다” 그 안의 행간이 주는 의미를 가만히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신입생 주예솔 아버지는 “예솔이 진로 문제로 많은 고민 있었으나, 학교 방문 때 재학생들 밝은 표정 보며 학교 결정하게 되었다” 그동안 딸 아이 말을 무시했는데 “3년 동안 딸에게서 배우겠다.” 아이들 학교 보내면서 학교에 한 번도 가 본 적 없다. 풀무 모임에 처음 온다는 분. 대구 신입생 채동주 어머니(초등교사)는 초등학교 현장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처절한 아이들의 일상. 동주가 중학교 들어가 학교를 자퇴한 이야기. 홈스쿨링을 한 이야기에 이어 채동주군 “풀무학교에 와 3월엔 새싹처럼 살겠다”는 포부를 들려주며 기대 반 두려움반의 속내를 내비쳤지요.
청주에서 오신 이진경어머니는 “아이가 행복하면 어디라도 좋았다”했고. 신입생 이진경양의 면접 에피소드. “잘 나가나 했는데 어떤 면접관이 4대강을 묻는 질문에 환경파괴,라는 임기응변으로 넘어갔다. 또 10가지 약속을 묻는 질문에 3가지만 생각나 쩔쩔맸다” 그날의 상황을 아주 감칠맛나게 들려주었고. 늦은 밤길을 달려오신 조현진 어머니는 “의젓하게 앉아 학우회장 소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다, 여유 있게 3학년 생활을 누리며 3년을 잘 마무리 하라”는 격려의 말을 들려 주셨습니다. 또 미래에 풀무 학교를 지망하시는 어떤 아버지는 “말로 듣던 풀무 학교의 실체를 막상 부모님들을 만나 확인 할 수 있었다. 풀무교육처럼 모든 학교의 교육을 바란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구요.
정승관 선생님은 서울의 볼일 보고 저녁 늦게 합류하셔서 1934년에 하신 김교신 선생님의 말씀 한자락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1934년 김교신 선생이 기록한 것을 보면 이런게 있다, 졸업장은 취직하는 데 만 쓰인다”라고 하신 말씀을 들려주시며 “풀무 학교는 정상적인 교육을 하기 위해 세워진 학교다” 라는 선언을 다시 하셨지요. 정샘의 이야기가 끝나고 뒷풀이가 있었는데 다음날 일정을 위하여 일찍 위채로 올라가서 구들장에 몸 지지느라 뒷이야기를 듣지 못했네요. 다음 날 아침 식사 후 단재 선생 기념관에 머물며 역사의 한 획을 그은 큰 어른의 기백을 가슴에 담고 고드미 마을을 떠났습니다. 가는 길에 근처에 있는 오색온천에서 목욕을 하고 피로를 풀고 가라고 금일봉을 챙겨주셔서 우리 일행은 30분 정도 목욕을 개운하게 하고, 한별 아버님이 송어회를 꼭 먹고 가야 한다고 붙잡아서 보양을 겸한 점심까지 먹고 다음 일정인 강원도로 떠났습니다. 이래저래 마음 써 주신 것 잊지 못 할 겁니다. 고드미 마을. 곧은 사람들이 세상의 등불이 되었던 곳. 어제 밤 나눈 우리들의 풀무정신을 담아낸 대화가 올곧게 세상 속으로 퍼지길 바랍니다.
3. 강원 모임(강원도 양양): 산을 닮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빼앗기다
먼 길을 내리달려 우리는 양양 진솔이네(수업생, 신입생 다솔이) 집에 도착했습니다. 사면이 산으로 둘러 쌓여있는 진솔이네 한옥 집은 본채와 별채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앞으로 짓고 싶은 집 물색을 하고 있는 사람(제가 시골에 집 짓고 살려고 물색중입니다) 에겐 더 찾을 것도 없다 싶게 모든 것이 좋게 보였습니다. 다시 덤 하나 건졌지요. 이렇게 시작된 양양은 들어갈 때부터 나올 때까지 내내 마음을 빼앗았으니 이건 뭐 저의 취향이니 어쩌겠습니까? 어쩌면 강원도의 산들과 진솔네 마을이 청양 산골에서 자란 저의 향수병을 자극한 것은 아니었을지.
다솔어머니가 차려주신 만찬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건 전회장님만이 아니었습니다. 바다와 산이 다 모인 식사가 끝나고 바닥이 절절 끓고 있는 별채에 엉덩이를 지지며 다시 이야기로 물꼬를 텄습니다. 아침이슬이 고요한 마을을 흔들어 놓는 것을 보며 오늘은 몇 시 까지 갈까? 분위기가 심상치 않구나(……)
회장 추인, 신입회장 인사, 부회장 전회장 인사, 학우회장 부회장 순서인데 둘 다 일이 있어 이날만은 공석이었는데 강원도 분들이 “강원도를 물로 보는 거냐” 해서 매우 난감(?)했지만 지역 대표이신 박상민(3년)아버지의 다음 학부모 모임을 태백으로 초대하겠다는 말에 분위기 반전.
정샘 “풀무학교가 반칙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면 좋겠다”는 말씀이 이어지고 도사같이 생기신 분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뭔지 모를 그 무엇에 압도당하고 있던 차, 이 시점에서 나는 고민하게 됩니다. 이런 큰, 혹은 자잘한 이야기와 분위기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모든 준비의 달인이신 상민 아버지 지역대표를 하고 싶었고 지역모임의 장소 및 준비도 하고 싶었는데 모두 채틀어 가서 서운했던 이야기. 진솔 아버지 우여곡절 끝에 지역모임 추진하기까지 설왕설래. 서운한 것 모두 폭발하는 상민아버지. 첩첩산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냥 놔두면 두 분이 밤새워 설전을 벌이며 유치와 유치에 진 이야기를 하실 듯.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전을 방불케 하는 자리였습니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투쟁은 계속 되어야겠죠. 다음번 강원 모임이 더 기대됩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한순 배 다 듣고 나니 여긴 이 두분만 그런 게 아니라 모임을 서로 하려고 엄청 노력했었더군요. 이 두 분과 함께 사시는 아내들의 그동안 상민아버지는 본인이 유치하고 싶은데 못해 속 썩고, 진솔아버지는 눈치도 없이 덜컹 진솔네로 지역모임을 채틀어와 준비하기까지의 보조 발언까지 배꼽 빠지게 웃으며 들었습니다.
여기는 수업생 학부모님이 많이 계셔서 수업생 부모님들께 수업생 사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풀무를 창업한 수업생들이 어떻게 살 고 있는가 재학생들의 부모는 무척 궁금하지요. 다음은 그분들의 말입니다.
이열호(교사. 수업생 이신애,이신영 둠)님은 풀무학교 입학의 1차적 상담을 도맡아 했으니 강원지역 풀무학부모의 대부랍니다. 수업생 자녀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나요? 여기에 대해 이열호님은 큰애(29, 대학원 박사논문 준비 중)와 둘째(대학4년 1학기 남기고 호주에 머물고 있음)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아직도 아이들은 모색하며 잘 살고 있으니 (걱정 없고)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싶다. 아이들이 자기 나름의 계획을 가지고 잘 살아간다는 것을 느끼겠다” 풀무학부모님답게 “방학에는 독서와 공부를 하길 바랬다”는 대목에서 공감. 시간이 지난 후 말이 별로 없던 딸이 “풀무 교육을 받게 해주어 고맙다고 했을 때 보람 있었다. 창업하고 나서 괴리감 느끼는 것 같았다. 대학 생활에서 배워야 할 것 풀무 교육 속에서 다 배웠으니 ........” 반짝이는 신입생 김다운 “ 실감이 안난다. 열심히 배우고 익히는 더불어 사는 평민이 되겠다”는 아주 의젓한 포부에 이어. 신입생 김다솔 아빠의 쪽집게 과외가 글쓰기에서 효과 만점이었다는 비밀 폭로. (폭소) “꿈이 없었지만 면접 보고 꿈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역시나 똑소리 나는 신입생들.
강원모임은 이야기 내내 폭소의 도가니였는데 거기에 장석근목사님(오봉교회. 수업생 종민)이 있었습니다. 종민이(성공회대 졸업. 청소년상담사)는 아버지의 학비에 부담을 줄까봐 중학교에 안 간다더니 갔고(폭소)중학교에 가서는 모든 시험은 (시험공부는 안하고)연필과 지우개를 준비하는 것으로 완료했고(또 폭소) 풀무에 가서 맘껏 놀아 창업식에 나누어주는 종이에 다들 뭐라뭐라 써져 있는데 준비중이라고 적혀 있는 유일한 학생이었고,(웃음) 하지만 성공회대 졸업하여 작년부터 보험료를 아들이름으로 내고 있어 아들 덕 본다고 자랑하심. 종민이가 집이 멀어 자주 오지 못하고 학교가 다 종민이를 키웠다, 종민아버지 꼬믹하게 “교장선생님 감사합니다” (폭소)
뒤이은 상민어머니 서울댁. “사십 오십이 뭐가 나이가 많냐, 아직도 청년의 나이다. 젊은이의 마인드로 살고 싶다. 지금이라도 뭐든 준비하고 할 수 있다. 매우 진취적인 분. 상민이가 풀무에서 느림의 미학을 퍼트리고 있다. 대견하다 감사하다. 기쁘다. 벅차다.” 순간 오봉교회 목사님 “그때 교회에서는 감사 헌금 낸다”(완전 폭소) 상민이의 느림에 “상민아 바꾸지 마” “억지로 바꾸지 마. 그런 점이 나는 맘에 들어” 그 어머니에 그 아들.
10년 전에 귀농하여 살고 있는 43회 기솔 45회 기현 아버지 녹색당에 가입하고 “조급해 하지 말자”라는 명언 날리시고 아이들이 뭐하냐는 질문에 대답 안하시니 다른 분이 서울대 갔다고. 우리 풀무에서 다른 대학 입학은 다 이야기해도 스카이 입학은 쉬쉬한다더니. ‘강원도의 힘’은 자식들에게서 나왔나. 자식 자랑이 끝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자식 자랑의 대부 대모는 태은이(47회) 태양이(43회)부모님이었는데, 부모님이 번갈아 들려주는 말은 “태양이는 중3 시절 학생회장이었고 아이들과 잘 어울려 놀다보니 학생회장까지 하게 되었다. 엄마 5남매가 다 풀무 출신이어서 자연스레 학교에 가서 담임 선생님께 풀무 학교 지원한다고 했더니 왜 하필 이름도 없는 농고를 가려하느냐” 이에 오봉교회 목사님 발끈 “왜 이름이 없어?”(폭소) “태은이가 6학년 때 부터 풀무 간다고 열공 하는 걸 본 태양이 나는 원없이 놀았으니 너는 풀무 가서 놀 건지 공부할 건지 선택하라고 동생에게 훈수를 두는 척 공부하는 게 낫다고 동생 꼬득였다. 태은이가 몸이 아파 병원 다니다 우울증이 왔고 1년 쉬는 것을 선택. 놀면서 편해진 측면이 있다. 아이들을 어릴 적부터 일 시켰다”(이 부분에서 노동착취로 아이들을 성장 시켰다고 한마디씩) 태은이가 왜 그렇게 여기저기의 모든 일들에 앞장서서 할 수 있었는지 백분 이해.
하솔(2년, 수업생 의솔)아버지(목사님)는 “아이들이 가난하게 살아도 멋있게 살기를 바래서 이것저것 부모로서 많은 걸 요구 한 것 같아 자녀들이 피곤했을 것이다. 의솔이나 하솔이나 그런 규범들을 지키려고 너무 애를 태우고 힘들었을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이 대목에서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나이를 먹으며 배우고 있구나. 참 고마운 것은 또 미안한 것은 내 아이를 키우며 내가 이만큼 성장했구나.
하솔아버지의 방학 때 와서 잠 만 자고 독서나 공부를 게을리 한다는 말에 교장 선생님 “아이들을 긍정하시라”하자 오봉교회 목사님 “자빠져 자는 걸 어떻게 긍정해”(폭소) 범근 아버님 “그때 좋은 방법이 있다. 애가 오면 나간다” (또 폭소)
이어 이 집의 주인장 다솔(신입생) 진솔( 46회) 아버지 김상기(교사)님 등장. 오지랖이 바다 같은 분. 전교조를 비롯 글과그림 도덕교과모임, 혁신학교 동네 공동체 작업반장까지 겸하고 있음. “진솔이가(강대 국어교육과) 풀무에서 까칠한 아이였다. 풀무정신에 도전하고. 대학에 가겠다고 공표하고 3년간 (눈치밥 먹으면서도) 꿋꿋하게 공부했다. 학교에서는 의연하게 지냈지만 집에 와서는 펑펑 울었다. 그러던 진솔이 대학에 가서는 풀무 정신대로 사느라 좌충우돌한다. 뒤늦게 풀무와 화해하느라 이젠 풀무를 제일 뻔질나게 드나드는 아이다. 동생 다솔이가 합격하고 나서 꼭 이 모임을 내가 하고 싶었다.” 상민엄마 “고대하던 대표로 선출된 사람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통보했을 때 야속했다.” (또 폭소) 강원도의 숨가쁜 하나되기의 반전과 반전이 한참 동안 이어지고.
신입생 김다운 부모님 산골 소녀 풀무 들어가기까지 이야기 이어지고,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귀농하여 십리를 걸어 다닌 다운이. 정말 싱그러운 아이. 그러나 전투적인 면이 돋보이는 다운이는 “풀무에 합격하고 아쉬웠던 점이 마음껏 자랑할 사람이 없어서 자축하는 나날들을 보냈다”고 “ 떨어져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풀무 준비 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감이 생겼다. 등교 문제가 해결되어 기쁘다” 다시 밤이 깊었습니다. 해도 해도 끝없는 자식 자랑에 오봉교회 목사님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야” 일갈 하며 자리를 떴습니다.
새벽 세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 전날 일정이 있어 참여하지 못하신 박그림님께서 먼 길을 달려오셨지요. 환경운동을 하시며 거의 설악산에서 사시는 분이지요. 김상기선생님 밥 먹으니 설거지거리 주섬주섬 챙기고 , 원두커피를 익숙하게 내려 내오시고. 차 한 잔씩 하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잠시 듣고, 우리는 짐을 꾸려 다음 모임지로 출발하려고 했으나,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정이 많으신 진솔 부모님 우리와 동행하였지요. 진솔 아버님이 잠깐 차를 몰아 간 곳은 황시백 선생님의 수목장이 있는 뒷산 겸 이분들의 공동 작업장이 있는 곳이었는데, 함께 농사짓고 함께 세상에 필요한 일을 나누며 든든한 울타리로 살고자 약속했던 황시백 선생님은 먼저 가셔서 진솔 아버님을 가장 애타게 하였지요. 언젠가 갈매(홍성, 수업생)어머니가 이곳에 와 눈물을 뿌렸다는 말을 들려 주었습니다. 저는 이름 석자만 들었던 터인데도 직접 선생님이 묻힌 곳에 오니 마음이 내려 앉았습니다. 그러니 진솔 아버지의 슬픔은 오죽했을까 싶더군요. 그리고 차를 돌려 근처의 절에 갔는데 우리나라 몇 개 안되는 적멸보궁 중 하나를 보았지요. 정이 넘치는 진솔 부모님 덕분에 수색약수터에서 비빔밥까지 얻어먹고 아쉬운 작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강원도의 힘’에 이어 폭소의 힘까지 알게 한 강원도. 강원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간밤에 어찌나 웃어댔는지, 일 년 치 웃음을 다 쏟아내고 온 느낌입니다. 떠나고 나서도 오봉교회 목사님의 그때그때 적절하게 함축적으로 요약하여 좌중을 웃기던 그 말투, 계속 머리 속을 맴돌았습니다. 흉내내고 싶어집니다. 웃음의 힘 강원도. 사랑합니다.
4. 경기 ․ 수도권 모임(경기도 양평): 수도권, 풀무를 만나다
한계령을 넘는데 바람이 거세게 불었습니다. 넷째 날, 경기 수도권에 사시는 분들의 생생한 삶을 들을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굽이굽이 고개를 넘었지요. 서로 번갈아 운전을 하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범근 아빠와 해나 아빠의 모습이 형제처럼 보기 좋았습니다. 4박을 앞 둔 양평에 도착했습니다.
모임 장소는 예얼(3년) 아버지의 지인이 운영하는 공동체 공간이었습니다. 지역 대표인 이슬비(3년)어머니는 계속 어딘가로 전화를 하고 오는 전화를 받느라 분주했습니다. 지역대표가 외부를 챙기느라 부산하게 움직이는 동안 먼저 온 김지희(2년)어머니 송향남(2학년 대표)님이 혼자 부엌에서 저녁 준비하는 걸 보니 밥 먹을 일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여기 오기 전 송주한 전회장님이 직장 생활을 많이 하는 지역이라 월요일 저녁에 모이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 한 말이 절로 떠오르는 순간이었습니다. 뒤이어 김예얼(3년)어머니가 오셨고, 신입생 왕현지와 어머니, 방학 때 더욱 멋있어진 장성필(3년)군과 장성필 아버님이 오셨습니다. 슬비와 지희 아버지 두 분은 다정하게 짐 보따리를 들고 나타나셨고요. 그리고 이예찬(2년) 부모님이 환하게 웃으며 자리를 잡았습니다. 자리를 정리하고 난 이종락 부회장님은 “어떤 조건을 가져야 중산층이라고 하나?” 학생 제군에게 질문을 던졌다. 학생들이 생각에 잠기고 이것 저것 틀린 답을 내놓자 “우리나라에서는 집은 48평 이상, 차는 2000CC 이상, 현금은 20억이 있어야 중산층이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악기를 하나 이상 다룰 줄 알고, 기부를 하는 사람이 중산층이다”. 부회장님의 중산층 발언은 나중에 생각해 보건데 수도권에서 나누기에 적당한 화제였다는 점에서 부회장님의 예리함에 다시 고개가 숙여집니다.
어찌나 손놀림이 잽싼지 슬비, 지희, 예얼 어머니는 부엌에서 이것저것 금세 만들어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에너지를 충전한 일행은 노래를 몇 곡 부르고 이야기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이곳은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자못 궁금해 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었지요. 전회장 범근 아버지 송주한님은 “여행,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그동안 못했던 일을 마음껏 하고 싶다. 수업생 부모를 포함한 수도권 지역 모임이 활성화 되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역시나 전회장님답게 수업생이 되어도 풀무 모임에열성을 다하겠다는 말씀으로 들려 흐뭇하기만 했습니다. 이번 하나되기에서 지역모임 활성화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수업생을 아우를 수 있는 지역모임 활성화를 하자는 의견은 하나의 공통 된 것이었습니다.
예얼 어머니 “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13년째 살고 있고, 좋은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었다. 일반 학교에 보낸 큰애와 비교할 때 풀무 교육의 위대함 알았다. 학부모 모임을 통해 풀무학교에 대해 좀 더 친근해졌다. 1년 밖에 남지 않아 서운하고 풀무 교육이 한 5년 쯤 되었으면 좋겠다(모두 공감). 교장 샘의 퇴임 아쉽다.” 장성필 아버님, 신입생 시절 회고 하시며“ 처음에 풀무에 대해 아는 바 없이 입학 시켰으나 지금 만나는 사람마다 풀무 자랑이다.” 성필군 자랑 한참 하시다 “성필 보면 대견. 학교에 감사. 풀무 교육 대단.”끝으로 앞으로 지역모임이 활성화 되어 성필이가 졸업해도 오겠다 하신다. 뒤이어 아들 장성필군 “ 열심히 살았고, 요새 여유 부린다. 설마 굶기야 하겠냐?(당당)” 신입생에게 한마디 잊지 않았다. “1학년 때는 뻘쭘하지만 2,3학년 되면 편하다.” 누군가 골든벨 포상으로 유럽 갔다 왔다는데 유럽 좋더냐 물으니 “굉장히 좋다” 또 짖궂게 “풀무보다 좋아?(풀무사랑에 모두 웃음)” 이예찬(2년) 어머니. “아프리카 가족여행을 통하여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대화 속에서 ‘인생’과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함께 나눌 만큼 예찬이가 성장 한 걸 보고 놀랐다. ” 예찬 아버지 “예찬이가 본인을 닮아 겉으로 표현이 많지 않으나 친해지면 오래가는 ‘가마솥’ 같은 성격이다. 1학년 3월에 공부 하겠다는 열의에 불타 많은 참고서를 가져갔지만 여름 방학 때 그냥 가져 오더라(학우회 웃음) 본래의 풀무 교육 과정을 따르지 않았다면 지금의 풀무 교육은 없었을 거다“ 풀무 교육 과정에 관심과 애정이 많은 진정한 풀무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뒤이어 김지희(2년)아버지 ”지희 덕분에 좋다. 학부모 모임 통해 다시 학생이 된 기분, (그동안 까지 학교를 싫어했는데) 학교에 대한 감정이 좋다.“ 지희 어머니 ”지희 풀무 학교 보내며 대학 포기 했고. 성적표에 연연하지 않으며,3년 동안 풀무인으로 살고, 자식이 부모 보다 낫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풀무 학교, 친구들 선생님들에게 감사한다“ 이슬비(2년) 아버지. ”아직 잘 알지 못하는 풀무지만 지적능력만 강조하지 않아 좋다. 부모맘은 대학 보내고 싶다. 하지만 본인이 선택하기를 바란다. 무엇 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는 풀무 교육이 좋다“ 슬비 어머니. ”슬비가 방학때 제과제빵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빵과 과자를 많이 구웠다. (재료 값이 만만치 않아)슬비 뒷바라지 하려면 돈 많이 벌어야 하는데 걱정이다(웃음) 슬비 보내고 생각 많이 바뀌었고, 풀무 학교 학생들 수준이 높다. 정치를 논하는 학생들이다. 우선 순위를 풀무학부모 모임에 두면 내가 발전한다. 참여하는 것이 풀무인 돠는 것이다“ 참여와 관심에 대한 욕구가 높고, 풀무인이 되기 위한 노력이 대단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 게 되었습니다.
뒤이어 왕현지(신입생)어머니의 초스피드 풀무학교 입학 성공기를 들을 수 있었지요. 마감 하루 전날 풀무학교에 대하여 알고 혼자 결정하고, 길거리 상담하고, 원서 내고, 면접하러 오면서 기차 안에서 풀무학교에 대하여 조금 알게 되었다” 그러자 누군가 “열심히 준비한 사람 (그거 알면 )원망할 거다(웃음)” 이어 수줍음이 많은 왕현지. “생각없이 붙으니 종았고, 축하 받아 좋았다”
뒤이어 회장님의 현장교사로서 느끼는 학교교육과 풀무교육 풀무 정신과 같은 장황한 의견 개진이 이어졌지요. “풀무 학교는 20여년 전교조 운동을 한 교사 입장에서 더욱 귀한 학교다. 50년 동안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교육 목표를 버리지 않고 오늘까지 온 것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두 아이를 풀무에 보내면서 사람으로 커주기를 바랐다”
이종락(한결 새결)부회장님 "7번의 업종을 바꾸면서 귀농 5년차를 맞이했다. 삶의 대안은 종착역이 없다. 일반 학교는 타이틀을 주려는 학교지만 풀무 학교는 스스로 서는 힘을 주는 교육이다. 한결이가 대학 3학년이 되는데, 어느날 반짝 깨달아서 대학 그만 둘래요 하고, 새결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안갈래요. 했으면 좋겠다(모두 웃음).떠밀려서 대학 안갔으면 좋겠고.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마치 순례자의 노래를 듣는 것 같은 기분이었지요. 뒤이어 교장 선생님 ”고등학교 3년 생활을 열심히 해라. 대학 가라 마라 할 필요없다. 자기 문제에 가장 급한 것은 자기다. 3년간 부딪혀서 깨달은 바가 있으면 하지마라고 해도 하게 되어 있다. 그 힘만 있으면 하고 싶어 덤빌 때 가속도가 붙는다“ (숙연). 인생을 배우러 이 세상에 나온 우리들. 조금 늦으면 어떻겠습니까? 밤이 깊어 갑니다.
아이들과 학교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 예얼군과 영선군은 어딘가로 급히 갔습니다. 학우회장 조현진양은 의연하게 학우회의 전망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공식적인 자리가 끝나고 부모님들과 2차 자리가 길게 이어졌습니다. 전날 강원도 산 속 과는 판이하게 다른 기운을 느끼며 수도권의 밤이 깊어갔습니다. 풀무에 대해 알고 온 사람, 모르고 온 사람. 어울려 함께 가는 풀무학부모 하나되기 모임. 이제 마지막 집결지를 향하여 떠나며 ‘풀무물’이라는 것을 가만 생각해 보았습니다. 3년이 지나면 아니 계속 만나다 보면 누가 더 라고 할 것 없이 풀무교육 이념에 빠진 풀무인들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학생들은 학생대로 부모들은 부모대로. 이것 또한 풀무인으로 성장하는 오롯한 기쁨이겠지요. 노랫말처럼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서로에게 고통뿐일지라도. 벗이여 어서 오게나. 벗이 되겠지요. 서울이 풀무를 만나고, 풀무가 서울을 변화시키는 그날까지. 아자. 아자.
5. 충남 모임(충남 공주): 눈은 소리 없이 쌓이고, 우리의 이야기는 끝없이 쌓이고
양평에서 송주한 전 회장님과 이종락 부회장님은 일이 있어 충남 홍성 모임에 함께 하지 못하고 서울과 상주로 가기로 하고 정선생님. 우리 부부 내외. 조현진, 주영선이 서둘러 발길을 돌렸습니다. 떠나기 전 대단한 눈이 올 거라는 눈 예보를 접한 후라 지체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다른 곳 같았으면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여유 있는 일정을 진행했을 터인데,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고 온 것이 아쉬웠지요. 우리 일행은 정선생님이 차를 가지고 공주로 오셔야 해서 홍성에 교장선생님과 주영선 학생을 내려 주었습니다. 약 1시 30분 쯤에 풀무학교에 도착한 것입니다. 교장샘은 5시에 맞추어 오시겠다고 하셨고, 영선이는 어머니와 공주로 오기로 하고, 예산으로 향했습니다. 공주 모임까지 시간이 좀 남아 예산 집에 현진이와 함께 갔습니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세면도 하고 현진이는 우리 딸 해나와 찬일이랑 이야기 꽃을 피웠지요. 4시가 되자 눈발이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불길한 예감이 덮쳤습니다. 빨리 공주로 가야한다는 생각에 해나와 현진이를 데리고 차를 몰아가는데, 눈발이 심상치 않게 휘몰아쳤습니다. 유구에서 빠져 봉황고개를 넘을 때는 아슬아슬하게 차를 몰아야 했습니다. 그때 홍성 모임 대표이신 이경옥선생님(2년 양준식)이 다급하게 전화를 해오셨지요. 청양을 넘어오고 있는데,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도저히 공주로 못 올 것 같고, 홍성으로 다시 가려 한다. 홍성 모임은 다시 하자. 예 그래야지요, 했지만 마음은 허전했습니다. 눈이 오려면 다 모인 후에 오지 이렇게 어정쩡하게 오다니. 충남모임도 제대로 되지 못하겠구나. 하면서 윤서네(창업)충남교육연구소에 도착했습니다. 교장선생님도 눈이 많이 와서 가기 어렵다는 전화를 주셨습니다. 윤서어머니는 40인분의 저녁 준비를 다 해 놓은 상태라 밥은 어쩌나 하면서 내리는 눈을 원망했지요. 홍성은 포기했지만 충남에 사시는 분들도 차를 돌리고 있다, 못 갈 것 같다. 계속 전화가 울렸습니다. 6시가 되어서 모인 사람들은 총 18명 정도. 예상인원에서 서 너 명만 못 오고 눈길을 헤치고 다 모여서 우리는 저녁밥을 먹으러 식당으로 모였습니다. 식당엔 맛있는 비빔밥이 소담하게 차려져 있었습니다. 충남에 내려오니 4일간의 일정으로 인한 피로가 확 풀리고 친정에 온 듯 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일정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다음은 그날 만난 분들에게서 얻은 귀한 말씀들입니다. 회장님은악사가 없다고 느꼈는지 손수 기타를 연주하며 함께 노래를 부르고 나서, 또 손수 회장 추인을 받아내고 올 한해 학부모회장으로서의 포부, 교장선생님을 대신하여 학교 전반적인 사안에 대한 긴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다음에 조현진 학우회장 순서였는데. 어른들 틈에 힘들었을텐데 전혀 내색하지 않고 5일 중 강원모임에만 참여를 못하고 4일 동안 동행하면서 학우회 소개와 선거 공약 설명을 차분하고 당당하게 들려주어 학부모님들의 큰 박수와 칭찬을 들었습니다.
이제 돌아가며 이야기 하는 시간. 첫 번째로 이영호.영준(창업) 아버지이자 2010년 학부모회장을 역임한 바 있는 이주현선생님은 “첫 아이 합격할 때 감격적이었다. 처음과 같은 감동은 많이 옅어졌지만 수업생학부모로 다음 모임을 기약하겠다. 그동안 아이 둘이 풀무를 다니며 변화하는 모습을 보았다. 진로 진학 등이 혼란스러울 때 왜 아이를 풀무에 보냈나 풀무 정신을 생각해 보았다. 풀무 정신을 배우자”는 원론적인 말씀으로 풀무 사랑을 전해 주었습니다. 윤서어머니는 공주 봉현리에 자리를 잡고 있는 충남 교육연구소를 지금의 자리에 올려놓기까지 궂은일 마다 하지 않고 헌신해 오신 분인데, “풀무 3년을 단련된 아이들은 언제고 자기 길을 찾을 수 있다. 윤서가 학교에 입학해 아픈 만큼 성숙하겠죠. 하는 편지를 보내온 적이 있다. 스스로 책임지면서 스스로 큰다. 그것이 풀무 교육이다” 학년대표를 맡았었고 지역 대표를 맡고 있는 이미영 (강솔비3년, 강누리,수업생)어머니는 풀무 정신을 학부모님들에게 확신을 가지고 풀무를 전도하시는 분답게 짧게 딱 잘라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들이 행복하니 나도 행복하다”
그 뒤로 수도권 모임날 일이 있으셔서 눈길을 헤쳐 충남 모임에 합류한 고양시에서 오신 신입생 조소연 아버지와 홍동에서 유일하게 참여한 신입생 민정기 어머니의 홍동 지역 학생 안배와 농업 학교의 역할 등에 대한 토론이 오랫동안 이어졌지요. 발단은 민정기 아버지의 홍동이라는 지역을 살리기 위하여 풀무 학교가 홍동 지역 학생들을 더 많이 뽑아야 한다, 그리고 농업학교의 교육과정에 대한 원칙론을 말하셨고, 뒤이어 민정기 어머니의 홍동 지역민으로 풀무 학교 학생 선발이 홍동을 배려하는 선발이 아니라는 그 지역 민심을 들려주었습니다. 이 문제를 가지고 30여 분 긴 토론이 이어졌는데, 교장샘이 계셨으면 그간 학생 선발이 여러 차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면서 올 수 밖에 없었을 저간의 학교 사정을 속시원히 해명 하실 수 있을 텐데 아쉬움이 컷습니다. 다만, 여러분들의 의견이 분분했지만, 이주현선생님의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 이제는 풀무 학교가 농업학교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충남 모임에서는 이런 주제로 설왕설래 했답니다. 답보 상태의 답답한 시간이 이어졌으나 그만큼 풀무학교의 위상이 높아져, 이제 학교 운영하시는 분들은 이런 예민한 문제까지 고민하고 해결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논쟁이 끝없이 이어지자 누군가 살아가는 이야기로 돌아가자 해서 신입생 조소연 학생 아버지부터 다시 이야기를 했지요. 조소연 아버지는 “아이 셋을 키운다. 여동생의 남편이 풀무 출신이고 홍동에 살고 있어 풀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학교를 만들고 싶었기에 더욱 풀무 교육에 관심이 많다. 고양시에서 몸살림운동을 하고 있다” 조소연양 “ 풀무에 입학을 고려하지 않았다. 화정이 편하고 좋다. 풀무를 와도 안와도 상관없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니 더 넓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시험을 준비했다.”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풀풀 풍기는 학생, 덕산에서 조경과 농사일을 하고 있다는 신입생 김시호 아버지는 순박한 질그릇 같았는데, 간단하게 하시는 일만 소개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시호가 1학년 때부터 보내고 싶었다. 경쟁률이 높아 걱정했다” 시호군은 멋지게 파마를 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농촌에 살면서 농사짓고 싶다” 신입생 이영재군의 어머니는 해직교사 출신의 일본어 교사인데, 수업생(27 향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딸은 맹하고 둔하고 착하지도 않았다. 풀무 다니면서도 별로 하는 일이 없는 것 같았다. 정샘도 기다려줘야 한다고 하시고, 3년간 기다리니 자신이 뭘 원하는지 알았다. 졸업과 휴학 취업 복학의 과정을 거쳤다. 중요한 것은 늘 바꾸는 생활이라 안정감이 없지만 사는 걸 보면 생동감 있게 한다. 그것이 풀무 3년이 준 힘이었을 것이다. 둘째는 어떻게 살지 궁금하다” 서산에서 온 신입생 김지운 아버지는 교사인데 “솔직히 지운이가 1프로 안에 들었다면 보냈을까? 생각해 본다. 풀무 재학생들 인터뷰하고 행복해 보이는 모습 보며 거기서 결정 했다. 학부모님들을 만나니 막연한 생각에 확신을 가지게 된다” 신입생 지운군 “ 아버지 추천으로 지원했다. 합격하고 두부 만드는 곳이야(풀무원과 착각)는 이야기 많이 들었다”
용인에서 충남 모임에 합류하신 김지원양 아버지는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느라 지원이가 5학년 때 귀국했다. 지원이가 한국에 와 적응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최소한 3년 동안 학부모활동 열심히 하겠다. 풀무 결정과 합격에 감사한다. 지금은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 그동안 학생운동부터 여러 단체에서 활동했고 앞으로 기독교가 바로 서는데 앞장서겠다” 아산 송악에 사는 신입생 김진호와 부모님 동생이 함께 왔는데, 2차에서 진호 아버지의 사는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진호 아버지 “ 부여 출신으로 여러 가지 일하다 지금은 귀농하여 농사일하고 있다. 어릴 때 집 근처에 홍산 농고가 있었는데 그때 거기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한다. 농사지으며 많은 걸 비울 수 있었고 지금은 마음이 편하다. 아이들에게 말한다. 나중에 행복해지기 위해 지금을 희생하지 말아라 ” 진호 어머니 “진호 초1 때부터 풀무 보내려고 작정했다”
홍동에서 온 신입생 민정기군의 “밴드에 관심이 있어 보이스피싱을 만들어 하고 있다. X-풀무 실력있다. 학교에 가서 공연 모두 보았다. X-풀무 때문에 지원하게 되었고 합격했지만 친구 1명이 떨어져 맘껏 기뻐할 수도 없었다.” 정기 어머니 “떨어진 학생은 1달 내내 울었고, 또 한 학부모는 한달 내내 병석에 누웠다. 창업을 준비하는 윤서가 어디선가 밤늦게 나타났습니다. 생각이 많고 감수성이 풍부한 학생답게 들떠 있는 신입들에게 한마디 합니다. ”풀무가 절대 선은 아니다“ (이야기를 잘 한 걸까) 하며 수줍어 했습니다. 가끔은 안 좋은 말도 해야되는 게 아닐까? 윤서는 또 한마디 덧붙입니다. ”즐길 건 다 즐겨!“ 윤서 이야기를 끝으로 시호네가 내일 할 일이 있다고 먼저 자리를 뜨고, 소연이와 소연아버지께서도 눈길을 마다하지 않고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다시 긴 시간을 가졌지요. 머루주와 막걸리를 마시면서 이야기는 끝이 없이 이어졌습니다. 3시가 넘어 자리를 정리하고 남자방과 여자방으로 나누어 잠자리에 들었지만 여자방에서는 다시 홍동의 정기 어머니의 홍동 지역 문제에 관한 불편한 심사를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밖에 눈은 계속 내리고 우리들 이야기도 쌓일대로 쌓이고 풀무학부모 모임은 끝이 없는 이야기 보따리가 풀려 나오지요. 하긴 아이들도 그렇지만 어디가서 동지를 쉽게 얻어요. 여기 와서 서로 박자 맞추는 것이지요. 다음날 10시 가까이 되어 아침 먹고 각자의 집으로 떠나는 것으로 5박 6일의 일정이 모두 끝났습니다.
5박 6일의 일정 동안 많은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역시 따라 나서길 잘 했습니다. 학교란 무엇인가? 부모에게 자식이란 존재는 무엇인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풀무학부모로 살아가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살아가면서 힘들 때, 곰곰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내년 하나되기는 어떨까? 풀무학부모여서 행복합니다. 준비해주신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덧붙임: 여기 적힌 것들이 혹시 누군가에게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의 기억력을 믿을 수 없고. 수용하는 과정의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잘못 된 부분이 있다면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특히 괄호 안은 저의 생각과 마음을 덧붙여 쓴 것입니다.